XPS 데이터 학습,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해 초보자 성장·국내 연구장비 산업에 새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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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S 장비 앞에 선 KIST 안재평(왼쪽), 김홍규 책임연구원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공지능(AI)이 소재 연구의 핵심으로 꼽히는 분석 분야에서도 수년간 경력을 쌓은 숙련자의 정확도를 가볍게 뛰어넘고, 오류까지 지적하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당장 전문가들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 숙련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고 한국이 뒤처진 연구장비 산업에서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특성데이터분석센터 안재평, 김홍규, 박수형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대표적 소재 분석장비 중 하나인 엑스선 광전자분광법(XPS) 판독 정확도 99.5% 수준의 새로운 분석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소재의 원소 조성과 화학결합을 알아내는 분석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첫 단추지만, 연구자들의 주관이 가장 많이 개입되는 분야기도 하다.

소재에 X선을 쏘아 방출되는 광전자를 분석해 원소 종류와 조성비, 화학결합 등을 알아내는 XPS와 같은 장비가 잘 갖춰져 있지만, 데이터가 복잡해 이를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오랜 경험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에너지에 따라 X선 강도가 달라지고, 원소별로 겹치기도 하면서 정량화가 어렵다"며 "숙련도가 있어야 이를 어느 정도 감안해 계산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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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S 분석장비로 측정한 데이터를 학습해 정확도 99%를 달성한 AI 모델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를 AI로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KIST에서 지난 10년간 축적한 XPS 데이터 3만 건에서 학습용 데이터를 추려내고, 이를 이론 및 실험 데이터와 결합해 확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20만 건을 학습시킨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AI 모델 정확도는 99.5% 수준으로, 인간이 10년 이상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을 단 하루 만에 쌓는 셈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안 책임연구원은 "사람은 5년을 일해야 경험 데이터 1만 건을 쌓는다면 AI는 순식간에 학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AI는 과거 10년간 사람이 분석해온 데이터 검수에서 7% 수준의 오차가 숨어 있는 것을 포착해내기도 했다.

장비 전문가들의 연차별 분석 정확도를 보면 5개월 경력 기준 82% 수준에서 1~2년 차는 87%, 5년 이상은 90% 수준까지 오르는 것으로 통상 분석되는데, 이처럼 사람의 경험이 쌓여도 절대적 정확도를 확보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AI가 한 번 더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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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S 장비 분석에 대해 설명하는 김홍규 책임연구원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연구팀은 특정 분석에만 AI를 적용해 얻은 결과라며 AI가 분석에서 인간을 바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 보조적 측면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5개월 경력 연구자가 이 AI 모델을 통해 자신의 분석을 검산하는 방식으로 3개월 교육하는 것만으로 정확도를 5년 차 이상 수준인 90%까지 높일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장비 하나가 측정하는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고, 이런 수십 개 분석 중 하나를 AI에 넘기는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처럼 연구 인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AI가 분석을 보조하면 인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최근 의료 데이터 분석에서 AI가 활약하듯 소재 분석에서도 AI의 역할은 무궁무진하지만, 데이터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는 건 이를 가로막는 약점으로 꼽힌다.

안 책임연구원은 "소재 개발, 공정 등 단계별 데이터가 표준화되어 나와야 하지만 노하우 문제 등이 있는 만큼 쉽지 않다"며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재 분석실 데이터 등만 모아도 표준화할 수 있고, AI 모델이 개발되면 데이터에 피드백을 줘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소재 분석이나 측정 등 하드웨어 기반 연구장비 산업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뒤처져 있지만, AI를 활용한 분석이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안 책임연구원은 "장비는 비록 외산을 쓰지만, 해석하는 것까지는 의존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국가가 연구장비 관련 AI 활용과 데이터 축적 등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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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안재평(오른쪽), 김홍규 책임연구원 [KIS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