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곤|칼럼니스트
긴 무더위를 잊기도 전 다시 날씨가 쌀쌀해진다. 조용하고 깊은 바다처럼 꿈꿔왔던 한강작가는 늘 준비하던 것처럼 그의 ‘브레인스토밍’을 조용한 목소리로 노벨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때 그 기쁜 소식을 나는 아바나에서 들었다.
드디어 우리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구나. 그렇게 작은 나라 '동방의 등불'이라던 타고르 詩에서와같이 한글과 더불어 1세기만에 한 민족의 쾌거를 이룬 셈이다.
소리라고 다 음악이 될 수 없고 글 이라고 써도 모두 문학이 될 수 없듯이 작가는 비바람 눈보라 그리고 고통의 가시밭길을 걸어 그 상처를 감정의 언어로 싸매어 감동이라는 선물로 완성시킨다.
백석을 사랑했던 자야는 일평생 벌어 모은 재산을 사회에 내놓으면서 법정스님께 자기 재산은 백석시인의 詩 한 줄 보다 못하다는 말 한마디로 문학의 가치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는 과연 소박하고 욕심이 없이 살다간 가난한 시인들에게 밥에 대한 얘기나 아니면 돈이 없어 보여 천대한 적은 없었는가. 오늘은 문학작품을 정치적으로 이해시키려는 놀라운 친구도 만났다.
사회주의 국가이며 금년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쿠바를 다녀왔다. 아바나 구도심의 국립학교 교정에 청동으로 만든(4m높이) 눈부신 단테, 치마처럼 묶은 바지차림의 셰익스피어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산 세르반테스 등 동상을 보았다.
1,2차 세계대전이후 강제점령 당했던 속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독립을 했다. 사실은 톨스토이 문학의 비폭력주의 영향으로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우리나라도 3.1운동 정신으로 이어졌다. 동시대인으로 쉐익스피어 타고르와 간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한강은 공식적인 첫 기자회견을 했다. 포니정 혁신賞과 상금을 받았다. 용기 있는 기업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지금 서울 누하동 한강의 집에는 집주인이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첫째는 관람객이 많이 몰린다. 더 중요한 거는 좁은 골목에 차량도 들어 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더 이상 볼거리가 없다. 가까운 오늘책방 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 그 돈으로 여린 한강의 마음을 격려 할 수 있다고 보았는가. 서울강남의 아파트가 20억 이라는데 어디로 가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게 하겠는가. 남의 집 잔칫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건 아닌지. 그렇다 '현대' 라는 대기업을 국민 모두는 우러러본다. 한강의 모교에서는 기념관을 짓겠다했고 아버지의 생가도 지방정부에서 문화재급으로 복원하겠다고 한다. 당장 다른 기업들은 기금을 서두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중해야 한다.
한글의 우리 문학이 K-조류에 그 크기와 바람으로 바닥이 뒤집히는 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강의 속깊은 문학정신과 피를 말리던 산고를 혼자 이겨냈지만 이제는 우리가 함께 위로하고 공감해보자..
몇 년 전 까지도 동유럽국가 일부에서는 북한에서 보급한 옛날 한글 교과서로 우리글을 공부한다고 한다.
지금 거침없는 한글의 표현이 세계의 젊은이들에 의해 모든 국가에서 폭증하고 있다.
정부와 현대는 지금부터 협의해서 '율곡로의 큰 건물'(한겨레신문2014년)을 옮기고 한국식 문학관을 지으면 좋겠다. 종로의 청운 문학관, 무계정사를 보면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헤밍웨이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유럽 중심의 문학은 미국으로 넘어온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 된다.
나는 이번여행이 헤밍웨이의 저택과 노인과 바다의 '고히마르‘를 보고 싶어 갔다. 아시아에서 타고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120년 만에 우리 한글로 된 문학상을 탄 기쁜 일이다.
물론 훌륭한 선대 문호들의 자양분을 먹고 지금 한강이 태어났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은 아무런 연유 없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 서양인들의 지식사고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상을 지배했던 언어권에서 한글 언어로 또 한강의 세밀한 감성의 문학으로 그리고 자랑스러운 문화주권국가로 인식 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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